도예가의 버려야 할 엘리트문화 의식!

버려야 할 엘리트문화 의식! [현대도예의 정착을 위한 제언에서..]

- 도예(陶藝)라는 어렵고 힘든영역에 뛰어든 도예가(陶藝家)는 삶의 풍요를 만드는 생활인(生活人)이다. 도예가의 활동영역에서 삶(생활)을 떠난 '예술'은 공허할 뿐이다.

19세기 말, 이미 [월리엄 모리스]는 현대도예(現代陶藝)의 비생산적 유희성(遊戱性)을 지적하면서 도예를 '큰 예술(Greater Arts)이 아닌 '생활속의 소예술(The Less arts of life)을 주장한 바 있다.

작은 예술로서의 도예, 이것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한 도예(陶藝)가 아닌 생활속의 도자예술을 말하는 것이다.(1883년에 "Lectures on Art Delivered in Support of the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Ancient Buildings -고대 건축 보호를 위한 사회지원을 요청하는 강연"의 제목으로 된 런던 J.H.M출판사의 간행물: 도자예술의 새로운 시각, 미진사)

젊은 우리의 도예가들이 서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추상적 조형이나 개념미술(槪念美術), 그리고 성격없는 설치작업 흉내를 내면서 '자유'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늘날 대부분 그룹 단체전에 나타난 추상표현이나 개념(槪念)작업을 비롯하여 새로운 표현주의 영향이 강한 작업일수록 그 작업의 성향(性向)이 모호하며, 복합적(複合的) 차용(借用)으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작가 스스로도 깨닫고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명쾌하게 이해시킬 수 없는,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불분명(不分明)한 작품으로 스스로를 망치기전에 편안한 휴식 속에 놓인 작은 찻잔속에서 자기발견(自己發見)이 더욱 빠를 수 있다.
사실 도예는 하나의 천재적인 예술가를 요구하기보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끈기 있는 작업을 하는 장인(匠人)들을 요구한다.

아쉬운 점은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서구(西歐) 현대미술 사조(思潮)의 양식들이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하여 무비판적 수용으로 잘못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흐름이라는 상황론(狀況論)에 빠져, 현대도예(現代陶藝)를 대변하는 듯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 도예가는 공예적 속성을 무시하여 탈 장르화 하면 할수록 건전한 예술적 비평이나 장기적 안목속의 흐름 밖에서 마냥 머무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다시말해, 현대미술의 국제화와 개방화의 난해한 논리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모색하는 시대적 작업으로 민족적 특질이나 자신의 역사부류와 전통을 이해하고 비판하면 객관화 할 수 있는 안목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단적인 표현만으로는 현재의 도예계에 주류를 이루는 엘리트 문화의식을 고집하는 큰 목소리에 가려 나 자신에게 조차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맞물러 우리는 대학 3년의 도예교육이 순수지향의 미적 체험을 위한 추상조각에 가까운 이 같은 경향의 작업으로 한국의 도예교육과 도예의 개념을 바꾸어 놓고 있다. 도예의 정의와 기본개념, 유약이나 소성과정까지 무시하면서 자신의 개성적 조형언어의 창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본다.

많은 도예가들이 조형작업을 하고 있음으로써 자신이 시대에 적합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마치 시대를 빙자하여 유행에 몰입하듯 순식간에 퍼져나가 이제 도자공예(陶磁工藝)를 하는 사람은 전통도자로 분류되고 고전주의 시대에 머무르는 사람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시대 분류란 시원(始原)에 근거하여 이미 지난 현대(現代)를 볼뿐이지 [현대에 맞는 작업]이란 사실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표현과 창작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많은 현대 도예가들은 "예술가"이기를 자처한다.
정치나 여성문제 등 시대정신의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또는 유희성의 표현수단으로서 일부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다른 장르에? 비교해볼 때 이것은 기대치 이하이다.

왜 그럴까? 우선 흙이라는 재료를 완성도 있게 다루지 못하는 표현의 제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도예가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이상"의 한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실상 조형작업에 있어서 근본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감각적인 표현력만 있는 것이 아니며 모름지기 예술이란 내용있는 형식을 가져야 한다. 혼자만의 추상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자기만족에 몰입하여 의식화된 구호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만이 과연 현대도예(現代陶藝)인가? 그것은 오히려 가장 원시적인 방법에 불과하다.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체험하고 발견하는 것이다. 난해한 것은 소통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까이 하기도 싫어진다. 더구나 별스런 내용도 없이 그럴 경우에는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회기(回忌)의 필연성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작업을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적 체험이 강조된 조형미술의 지향만으로 언제부터 도예가들이 점토예술의 과정에만 안주하였으며 도자공예(工藝)가 아닌 도자미술(美術)로 남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더구나 예술의 목적성도 불분명한 현대도예의 주류를 이루는 조형도자류의 특성만으로 도자예술인 공예미의 효용성(效用性)과 '한국현대도예'의 문화예술적 가치체제는 더욱 찾기 힘들어질 뿐이다.

저자: 이재삼, [도벽@환경도예] 저자후기에서..